[칼럼] 쉬운 정보는 어떻게 만드냐고 물으신다면
2025.05.30

 

주변에서 어떤 회사에 다니는지 물으면, 어쩐지 한 번에 답하기 어렵습니다. 사회적기업이라고 말은 하지만 어떤 일을 하는지 자세히 설명하는 것이 고민되기도 하고요. 놀랍게도 몇몇 소소한소통 직원들이 겪는, 공통된 경험이었습니다.

소소한소통을 아는 분들은 쉬운 정보를 어떻게 만드는지 묻기도 합니다. 이것도 쉽게 답하기에는 고민이 됩니다. 예전 개그 프로그램에서 나온 유행어처럼, '그때그때 달라요'라고 답할까 싶기도 합니다.

오늘은 주명희 본부장이 소소한소통이 쉬운 정보를 만드는 과정에 대해서 들려드리고자 합니다. 소소한소통이 '소소한소통은 어떤 회사인가요?'라는 질문에 대해 가지고 있는 가벼운 고민을, 들어주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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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운 정보는 어떻게 만드냐고 물으신다면

주명희(소소한소통 총괄본부장)

 

 

쉬운 정보가 생소한 사람에게 쉬운 정보가 무엇인지 쉽게 설명하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다. 특히 ‘소소한소통은 어떤 회사인가요?’라는 질문에 대답할 때는 쉬운 정보가 무엇인지부터 설명해야 하는데, 7년 여간 최소 수백번쯤 했던 대답이었어도 여전히 대답 후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한 번에 간결하게 설명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럴 때 정보 접근이 어려운 대상을 위한 지원 수단이란 점에서 수어나 점자에 빗대어 쉬운 정보를 설명하면 상대방을 이해시키기 조금 더 쉬워진다. 발달장애인이나 인지, 문해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위해 제공하는 쉬운 정보는 청각장애인에게 수어 통역, 문자 통역 등을 제공하고, 시각장애인에게 점자나 음성을 통해 정보를 제공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수단으로 인식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쉬운 정보가 만들어지는 과정과 결과물은 수어, 점자와 상당히 큰 차이가 있다. 

 

수어는 음성언어를 ‘통역’한다고 하고 묵자를 점자로 바꾸는 것은 ‘점역’이라고 한다. 모두 번역할 ‘역’을 사용한다. 각각 말이나 글로 된 원문을 일정한 규칙, 체계에 따라서 같은 의미를 갖는 다른 언어, 문자 체계로 바꾼다. 그런데 쉬운 정보는 수어와 점자처럼 동등하게 대치해 통역 또는 번역하는 방식으로 접근하지 않는다. 

 

우선 말이나 글을 쉽게 바꾸기 전에 원문의 의미와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파악한 후 전달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 정보를 선별하는 것을 전제로 하기에, 전달하는 정보의 범위가 원문과 달라진다. 글을 읽는 데 어려움이 있는 사람에게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정보를 처리할 수 있도록 정보의 양을 줄이면서도, 우선적으로 알아야 할 핵심 내용부터 명확하게 전달하기 위해서다. 

 

원문의 정보를 정제하는 기준은 정보를 이용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정보의 제공 목적이 무엇인지가 가장 중요하다. 이는 원문을 충분히 분석해야 가능하기도 하고 결과물의 구체적 활용까지 고민하는 일을 수반한다. 이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정보는 쉬운 정보에서 덜어지고, 정보의 구성, 순서도 원문과 달라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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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장애인도서관과 함께한 2024 읽기쉬운책 제작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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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장애인도서관과 함께한 2024 읽기쉬운책 제작 과정


 

정제된 정보를 바탕으로 말, 글과 문장을 쉽게 바꾸는 일도 사실 바꾼다기보다는 ‘새롭게’ 쓰는 일에 가깝다. 쉬운 글 작성에 대한 많은 국내외 지침이 대부분 유사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지만 이는 대부분 지향할 점(단문으로 쓰기, 한 문장에 하나의 정보를 담기 등)과 지양할 점(어려운 단어 사용 피하기, 불필요한 수식 없애기 등)에 대한 것으로,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에 가깝다. 

 

수어에서 ‘고맙다’라는 단어가 이 단어에 상응하는 수어로 통역될 수 있다. 점자에서도 묵자 ‘가’에 상응하는 점자로 변환이 가능하다. 하지만 쉬운 정보는 수어나 점자처럼 한국어-한국 수어, 한글 묵자-한글 점자처럼 상응되는 언어나 문자 체계가 있는 것은 아니다. 쉬운 정보로 바꾸기 전후가 모두 같은 한글 사용 체계 안에 있고 앞서 언급한 지향점과 지양점을 기준으로 만들지만, 기준으로 정해지지 않은 더 많은 부분들은 작성하는 사람이 읽는 사람의 문해 수준, 경험 등을 보다 폭넓게 상정해서 구체적 기준을 세세하게 잡아나간다. 

 

그래서 같은 의미지만 서로 다른 단어를 선택하거나 문장의 어순, 사용한 조사에 따라서도 결과물이 다르기 때문에 같은 원문을 10명의 사람이 쉬운 글로 쓰면 10개의 조금씩 다른 글이 나오게 된다. 

 

한 마디로 어떤 공식이나 정답이 없다는 것이 쉬운 정보를 만드는 일의 어려움이다. 정답은 없지만 좋은 답을 찾기 위해 기획자이자 라이터, 디자이너, 발달장애인 감수위원, 파트너(소소한소통에 제작을 의뢰한 담당자) 등 여러 사람이 여러 단계를 거치며 하나의 쉬운 정보를 위한 수많은 피드백을 주고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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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국보순회전: 모두가 함께하는 180일의 여정> 쉬운 해설 작업

쉬운 해설과 점자가 함께 담긴 책자, 쉬운 해설을 반영한 수어 해설 영상 제작

 

 

 

 

이렇게 나온 쉬운 정보 결과물이 수어 스크립트나 점역용 원고로 사용되기도 한다. 쉬운 정보는 발달장애인 뿐아니라 다른 언어, 문자에 익숙한 사람들, 한글을 배우고 있는 사람, 그밖에 모든 사람에게도 더 이해하기 편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한 편의 쉬운 정보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해할 수있는 정보’가 무엇인지 고민하고 이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이 과정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에 더 자세히 다뤄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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