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꼭 언어로만 소통하지는 않습니다. 말 한마디 없이 서로의 표정, 눈짓과 손짓, 한숨이나 비명소리 같은 비언어적 표현으로도 소통할 때가 있죠. 때로는 이런 비언어적 표현이 감정을 더 잘 전달하기도, 풍부하게 느끼기도 합니다.
소소한소통은 그동안 쉬운 글을 중심으로, 이해를 돕는 그림을 두어 쉬운정보를 만들었습니다. 이번에는 그림에서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항상 발달장애인을 위한 정보를 ‘글’이라는 틀에 가두어 전했다면, 이번에는 ‘그림’이라는 더 자유로운 방식으로 전했습니다. 모두가 경험하게 되지만, 발달장애인은 곧잘 소외되곤 하는 ‘죽음’이라는 주제에 대해서요.

죽음 앞에서, 발달장애인에게 알려주지 않은 것 백정연(소소한소통 대표) 부모가 떠난 뒤, 남겨진 사람의 삶 지난 9월, ‘피터팬 아빠’로 알려진 전경철 작가가 세상을 떠났다. 중증 자폐성 장애가 있는 아들을 홀로 돌봐 온 그는 간암 말기 진단을 받은 뒤 자신의 죽음보다 남겨질 아들의 삶을 먼저 걱정했다. 아들이 살아갈 곳을 찾기 위해 전국의 수많은 시설을 알아봤지만 받아주는 곳을 찾기 어려웠다. 다행히 세상을 떠나기 전 아들이 지낼 곳을 마련할 수 있었다. 그의 사연이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이 함께 슬퍼하고, 발달장애인과 가족의 미래를 걱정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특별한 한 가족에게만 해당하는 일이 아니다. 이 사연을 접하며 부모가 세상을 떠난 뒤 발달장애인이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부모가 오랫동안 자녀의 일상을 지원해 온 경우, 부모의 죽음은 가족을 잃는 사건인 동시에 생활환경과 관계가 달라지는 일이기도 하다. 살던 집을 떠나야 하거나, 익숙한 일상을 이어가기 어려워질 수도 있다. 『엄마가 죽었을 때』의 이야기를 쓴 김영아 작가 역시 현장에서 비슷한 질문을 마주해 왔다. 20년 넘게 발달장애인의 삶을 지원해 온 그는 부모가 세상을 떠난 뒤 익숙한 생활이 무너지고, 살던 집과 동네를 떠나야 했던 발달장애인들을 만났다. "엄마가 죽으면 저는 어떻게 살아요?"라는 질문에는 가족을 잃는 슬픔과 그 이후의 삶에 대한 두려움이 함께 담겨 있었다고 했다. 부모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발달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주거와 돌봄, 사회적 관계를 지원하는 일은 중요하다. 그런데 그에 앞서 생각해야 할 문제도 있다. 발달장애인 자신은 가족의 죽음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가족이 아프다는 사실을 알고, 죽음을 준비하고, 장례를 치르는 과정에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까? 발달장애인이 죽음을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이유로 가족의 죽음을ㅍ 충분히 알리지 않거나 장례 과정에 참여시키지 않는 경우가 있다. 슬픔을 덜어주기 위한 선택일 수 있지만, 그로 인해 소중한 사람과 마지막 인사를 나눌 기회를 잃을 수도 있다.
글이 없어서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책 소소한소통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담아 그림책 『엄마가 죽었을 때』를 만들었다. 발달장애인이 가족의 죽음을 이해하고, 죽음 이전과 이후에 일어나는 일을 살펴보며, 자신의 경험과 감정을 이야기할 수 있도록 돕는 책이다. 글 없는 책을 만들게 된 계기는 영국에서 만난 비욘드 워즈(Beyond Words)였다. 발달장애인의 부모이자 영국 상원의원인 쉴라 홀린스(Sheila Hollins)가 설립한 단체로 건강과 의료, 인간관계, 죽음 등 이해하거나 이야기하기 어려운 주제를 글 없이 그림으로 전달하는 책을 만든다. 글 없는 그림책은 독자가 그림 속 인물의 행동과 표정, 상황을 살펴보며 자신의 말로 이야기를 만들어 가도록 돕는다. 같은 그림을 보더라도 사람마다 떠올리는 기억과 감정이 다르기 때문에 책을 함께 읽는 사람은 정답을 알려주기보다 독자의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 소소한소통이 그동안 만들어 온 쉬운정보가 주로 글을 쉽게 쓰고 그림으로 이해를 돕는 방식이었다면, 글 없는 그림책은 독자가 그림을 먼저 이해하고 해석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자유롭게 꺼낼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다. 영국에서 만난 이 새로운 정보 전달 방식이 소소한소통의 첫 번째 글 없는 그림책으로 이어졌다.
책을 만들면서 흘린 눈물
『엄마가 죽었을 때』를 만드는 과정은 다른 쉬운정보를 만들 때와 조금 달랐다. 책에 들어갈 장면을 정하고 그림을 살펴보는 동안 작업자들이 여러 번 눈물을 흘렸다. 누군가는 이미 세상을 떠난 가족을 떠올렸을 것이고, 누군가는 언젠가 헤어져야 할 소중한 사람을 생각했을 것이다. 아직 경험하지 않은 이별이 두려웠을 수도 있다. 그림 속 가족의 이야기를 만들고 있었지만, 어느 순간 각자의 삶을 돌아보게 된 것이다.『엄마가 죽었을 때』를 만드는 과정은 다른 쉬운정보를 만들 때와 조금 달랐다. 책에 들어갈 장면을 정하고 그림을 살펴보는 동안 작업자들이 여러 번 눈물을 흘렸다. 누군가는 이미 세상을 떠난 가족을 떠올렸을 것이고, 누군가는 언젠가 헤어져야 할 소중한 사람을 생각했을 것이다. 아직 경험하지 않은 이별이 두려웠을 수도 있다. 그림 속 가족의 이야기를 만들고 있었지만, 어느 순간 각자의 삶을 돌아보게 된 것이다. 책에는 가족이 함께 밥을 먹고 생일을 축하하는 평범한 일상이 등장한다. 그러다 어머니가 아프고, 가족은 병원에 가고, 결국 장례를 치른다. 하지만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남겨진 사람은 슬퍼하고 그리워하면서도 다시 일터로 돌아가고,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또 한 번의 생일을 맞는다. 우리가 눈물을 흘렸던 이유는 죽음을 다루는 장면이 슬퍼서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평범했던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사랑하는 사람과의 시간이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을 그림을 통해 마주했기 때문일 것이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일이지만, 우리는 좀처럼 죽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하고 싶지 않아서, 상대방에게 상처를 줄까 봐, 혹은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대화를 미룬다. 그런데 그림을 보고 있으면 말로 꺼내기 어려웠던 생각과 감정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책을 만들던 우리도 그랬다. 누군가에게 설명하기 위해 그린 장면들이 오히려 우리 자신의 기억과 감정을 건드렸다. 글 없는 그림책이 가진 힘을 제작 과정에서부터 경험한 셈이다.
그림 속 이야기가 자신의 이야기가 되는 순간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발달장애인들과도 함께 그림을 살펴보았다. 그림 속 상황과 등장인물의 표정, 이야기의 흐름이 충분히 이해되는지 확인하고 의견을 반영했다.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발달장애인들과도 함께 그림을 살펴보았다. 그림 속 상황과 등장인물의 표정, 이야기의 흐름이 충분히 이해되는지 확인하고 의견을 반영했다. 처음에는 그림에 보이는 것을 이야기했다. 가족이 함께 밥을 먹고 있다는 이야기, 생일 케이크가 있다는 이야기, 누군가 병원에 갔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런데 책장을 넘기면서 대화의 내용이 달라졌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던 경험을 들려주는 사람도 있었고, 어머니가 아팠던 일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었다. 장례식에 친구들이 찾아와 주었던 기억, 슬픔 때문에 밥을 먹기 어려웠던 시간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가족사진을 찍어 두고 싶다는 말도 나왔다. 그림 속 가족의 이야기가 어느 순간 자신의 이야기가 된 것이다. 우리는 흔히 발달장애인이 죽음처럼 복잡하고 추상적인 개념을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죽음을 설명하는 방법에 집중하거나,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이유로 아예 이야기하지 않기도 한다. 하지만 함께 책을 읽는 과정에서 확인한 것은 조금 달랐다. 발달장애인들은 각자의 경험을 가지고 있었고, 그 경험에 관한 생각과 감정도 가지고 있었다. 다만 그것을 꺼내어 이야기할 기회가 충분하지 않았을 수 있다. 이 책에는 죽음에 대한 정답이 없다. 그림을 보고 슬퍼해도 되고,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해도 된다. 어떤 장면이 이해되지 않으면 질문할 수도 있다. 혼자 생각할 시간을 가져도 괜찮다. 책을 함께 읽는 사람의 역할도 달라진다. 무엇을 이해했는지 확인하거나 올바른 답을 알려주는 사람이 아니라, 상대방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필요한 대화를 이어가는 사람이 된다.
이 경험은 쉬운정보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다시 생각하게 했다. 쉬운정보의 목적은 단순히 내용을 쉽게 전달하는 데 있지 않다. 정보를 이해한 사람이 자신의 생각을 떠올리고, 질문하고,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며, 필요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있다.
누구나 자신의 방식으로 작별할 수 있도록 우리가 발달장애인에게 전하고 싶었던 것은 이별을 피하는 방법이 아니라, 충분히 작별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별’과 ‘작별’은 모두 헤어진다는 뜻이지만, 이별이 헤어지는 사건에 가깝다면 작별에는 떠나는 사람에게 인사를 건네는 행위가 담겨 있다.누구나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을 피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이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고, 궁금한 것을 묻고, 자신의 방식으로 인사를 나눌 기회는 가질 수 있어야 한다. 부모가 세상을 떠난 뒤 발달장애인이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은 우리 사회가 함께 책임져야 할 과제다. 동시에 부모의 죽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고, 슬픔을 표현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애도할 수 있도록 돕는 일도 중요하다. 삶을 지원한다는 것은 일상을 유지하는 것뿐 아니라 그 안에서 경험하는 기쁨과 슬픔, 만남과 헤어짐을 함께 존중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글 없는 그림책을 만들며 확인한 것은 그림이 글을 대신할 수 있다는 사실만이 아니었다. 적절한 표현 방식과 대화의 기회가 마련되면, 그동안 충분히 듣지 못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책을 만들던 우리도 울었고, 그림을 함께 보던 사람들도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다. 죽음을 이야기하는 시간이었지만 그곳에는 슬픔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기억과 그리움, 앞으로의 삶에 대한 바람도 함께 있었다. 『엄마가 죽었을 때』가 발달장애인과 가족, 지원자들이 그동안 미뤄 두었던 이야기를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언젠가 찾아올 죽음을 혼자 두려워하기보다 함께 이야기하고,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며, 각자의 방식으로 작별을 준비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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