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발달장애인의 경험이 전문성이 되는 순간
2026.02.25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쉬운 정보를 만들고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발달장애인이 어떤 정보를 어려워하거나 모른다고 말할 때 소소한소통은 기뻐합니다. 소소한소통은 발달장인애인의 실패한 경험에서부터 쉬운 정보의 필요성을 발견하고, 그곳에서 권리가 시작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발달장애인의 경험은 어떻게 권리로 이어질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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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인의 경험이

전문성이 되는 순간


백정연(소소한소통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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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전문성을 '배운 것'과 동일시한다. 자격증, 학위, 교육 이력이 그 사람의 전문성을 증명한다고 여긴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소소한소통이 쉬운 정보를 만들면서 오랜 시간에 걸쳐 발견한 것은, 발달장애인의 전문성은 그 어떤 자격이나 교육 이력보다, '살아온 경험' 그 자체에서 나온다는 사실이다. 특히 소소한소통은 발달장애인이 ‘해보지 못한 경험’이나 ‘실패한 경험’이 발달장애인만의 전문성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정보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



정보는 삶의 질을 좌우한다. 무엇을 선택할지, 어디에 갈지, 어떤 서비스를 이용할지, 선거에서 누구를 뽑을지 결정하는 일상의 크고 작은 모든 순간에 정보가 있다. 그런데 그 정보가 이해되지 않는다면 선택은 불가능해진다. 선택이 어려워지면 참여도 자연스럽게 줄어든다.

 

발달장애인은 일상 속 안내문, 메뉴판, 공공문서, 웹페이지 화면 등 일상 곳곳에서 막막함을 자주 느낀다. 글을 읽었지만 이해되지 않고, 설명은 있지만 무엇을 해야 하는지 선택하기 어렵다. 이는 단순한 불편이 아니라 의사결정의 제약이며, 결국 사회 참여의 제약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정보 접근의 격차는 곧 삶의 격차가 된다. 과거에는 이런 상황을 개인의 능력 문제로 여기는 사회적 인식이 강했다. 그러나 발달장애인법 시행 이후 우리나라에서 쉬운 정보가 활용되고 점차 확산되면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이해가 어렵게 만들어진 정보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만드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소소한소통의 발달장애인 감수위원단 '쉬우니'는 2017년부터 쉬운 정보를 만들어 온 쉬운 정보 전문가다. 오랜 시간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쉬운 정보 제작 과정에 참여했기에, 자신의 경험이 곧 전문성이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특히 지난달 진행한 쉬우니 감수 역량 강화 교육에서 발달장애인은 더 이상 정보의 수혜자가 아니라, 정보를 평가하고 기준을 세우는 사람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쉬우니를 통해 다시 한번 확인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한 가지 사실이 분명해졌다. 잘 만든 쉬운 정보가 늘어나는 것만으로는, 정보 접근의 불평등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보 접근이 어렵다는 사실을 발달장애인이 스스로 불평등으로 인식하지 못한다면, 그리고 그것을 권리로 요구할 수 없다면 쉬운 정보는 여전히 누군가의 선의에 기대는 지원에 머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소소한소통은 발달장애인이 쉬운 정보를 당연한 권리로 인식하고, 필요할 때 직접 요구할 수 있는 주체가 되는 구조를 고민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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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전문가가 만드는 기준

 

그 고민의 결과가 바로, 발달장애인 ‘경험전문가’ 양성이다. 일상 속에서 어려운 정보를 발견하고, 왜 어려운지 살펴보고, 어떻게 바꾸면 좋을지 제안하고, 직접 요구하는 과정을 거쳐 발달장애인이 경험전문가로서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이 과정의 핵심은 지식을 전달하는 데 있지 않다. 자신의 경험을 사회문제로 정의하고, 그 문제를 권리의 언어로 말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데 있다. “이건 이해하기 어려워요.”라는 생각이 “그러니까 더 쉽게 만들어 주세요.”라는 요구로 연결되는 순간, 발달장애인의 경험은 전문성이 된다. 

 

소소한소통은 발달장애인의 경험을 확장하는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려 한다. 쉬운 정보를 이해하는 경험, 어려운 정보를 발견하는 경험, 그리고 더 쉽게 해달라고 요구해 보는 경험을 쌓아가는 것이다. 처음에 감수에 참여하는 발달장애인은 대개 의견 내는 것을 망설인다. 자신의 의견이 맞는지 확신하지 못하고, 어렵다고 말해도 되는지 고민하며, 옆사람 눈치를 보기도 한다. 그러나 의견을 내는 경험이 반복될 수록 소극적인 태도는 달라진다. 자신의 의견이 실제 결과물에 반영되는 경험이 쌓이면 단순히 “어렵다”고 말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이렇게 바꾸면 좋겠다”고 제안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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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IC Works는 발달장애인을 ‘경험 전문가(Expert by experience)’라고 부른다. 그 표현이 설득력을 갖는 이유는 분명하다. 전문성의 출발을 지식이 아니라 경험에서 찾기 때문이다. 소소한소통이 하고자 하는 일 역시 다르지 않다. 쉬운 정보를 통해 발달장애인의 정보 접근권을 보장하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사회 참여의 기반을 넓히는 것, 그리고 쉬운 정보가 일부의 배려가 아니라 보편적 권리로 존중받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휠체어 사용자를 위해 턱을 없애거나 경사로를 설치하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러운, 그리고 꼭 필요한 일이라 믿는다.

 

발달장애인의 경험이 충분하고 존중될 때 전문성은 자란다. 그리고 그 전문성이 두터워질수록 쉬운 정보는 더 유용해진다. 정보를 이해할 수 있을 때 참여할 수 있고, 참여할 수 있을 때 삶은 비로소 자신의 것이 된다. 나아가 그 경험이 당연한 권리를 요구하는 힘으로 이어질 때, 보장된 권리는 다시 세상의 기준이 될 것이다. 소소한소통은 발달장애 당사자와 함께 그 과정을 함께 만들어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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