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더이상 전시가 낯설지 않을 때
2025.11.28

전시회에서 그림과 조각 등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일,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 주는 문화 생활이지만 전시는 가끔 부담스럽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예술이라고 하면 어쩐지 복잡하고 난해할 것 같은 예감 때문이에요. 어려운 전시 해설을 보면 고개를 갸웃하면서 몇 번이고 다시 읽기도 합니다. 발달장애인은 어떨까요? 전문 용어와 외래어, 한자어 등이 가득한 전시 해설은 발달장애인에게 더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발달장애인도 이해할 수 있는 예술을 위해, 쉬운 전시 해설을 만드는 일은 예술을 어렵게 느끼는 모든 관람객을 위한 일이 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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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이상 전시가 낯설지 않을때

주명희(소소한소통 총괄본부장)

 

 

 

"쉬운 정보가 만드는 동등한 경험과 삶"

 

소소한소통이 2021년에 낸 책 <쉬운 정보, 만드는 건 왜 안 쉽죠?>는 소소한소통의 경험에 기반해 쉬운 정보 제작 지침을 담은 책이다. 내용 중에는 ‘쉬운 정보 제작 시 기억해야 할 10가지’를 안내하는데, 구체적으로 적용해보았으면 하는 점도 있지만 선언적인 지향점도 함께 포함돼 있다. 그 중 하나가 ‘삶의 변화를 이끌어 내는 정보가 좋은 정보다.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삶을 확장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내용이다.  

 

 

‘누구나 쉽게 이해가능한가’가 쉬운 정보가 갖춰야 할 기본 요건이라면, 쉬운 정보로서의 가치를 남다르게 만드는 지점은 실제 당사자의 삶이 어떻게 변화할 수 있는지까지 고려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새로운 복지 서비스를 쉽게 설명할 때, 그 복지 서비스가 어떤 것인지 정의를 쉽게 알려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당사자의 관점에서 나도 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지, 이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까지를 함께 알려주었을 때 정보는 훨씬 더 가치있게 활용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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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소통이 처음으로 쉬운 전시해설을 선보이게 됐던 것이 2022년 서울시립미술관 <시적소장품> 전시다. 현대미술작품에 대한 해설을 쉽게 제공해보자는 의뢰를 받았을 때, 가장 반가웠던 것은 발달장애인의 ‘예술’에 대한 경험을 확장할 수 있는 기회란 점이었다. 그때도 그렇지만 여전히 발달장애인을 위한 정보 제공의 우선순위는 권리침해 예방, 복지정보, 고용 지원, 자립생활에 필요한 의식주 관련 기술과 같은 기본적 영역 위주로 머물러 있다. 유일하게 국내법에서 쉬운 정보를 의무화한 <발달장애인법> 10조만 보더라도 국가와 지자체가 제공해야 하는 쉬운 정보의 범위는 발달장애인에게 ‘중요한 정책과 법령’으로 한정된다. 하지만 기본적 필요를 충족하는 것만이 삶의 전부는 아니지 않는가? 누구나 다양한 삶의 영역에 자유롭게 접근하고 경험할 수 있을 때 삶은 더 풍요로워진다. 

 

성인 발달장애인이 사회에서 차별 없이 동등한 삶을 산다는 것은, 비장애인이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누리는 경험을 발달장애인도 동일하게 누릴 수 있을 때 가능하다. 그런 의미에서 가정이나 서비스 제공기관처럼 제한된 범위를 벗어나, 새로운 것을 경험할 수 있는 선택지가 어디에나 다양해지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경험을 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그것에 대해 ‘아는 것’이 먼저일 것이다.​ 

 

 

 

 

 

"예술의 가치를 알리는 쉬운 전시 해설"

 

특히 미술관, 박물관은 열린 공간임에도 보이지 않는 권위나 전문성이 주는 무게감 때문에 비장애인 역시 왠지 뫂르게 다가가기 어려운 공간처럼 느끼곤 한다. ‘나는 예술에 대해 잘 모르는 데 가서 전시를 즐길 수 있을까?’라는 부담감 같은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전시 해설을 쉽게 제공하는 것은 그런 부담감, 허들을 낮추는 방법 중 하나로 제시될 수 있다. 발달장애인 뿐 아니라 예술작품 감상을 어렵고 낯설게 느끼는 보통의 사람들도 전시 정보가 쉬워졌을 때 관람이라는 행위에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쉬운 전시 해설은 전시 서문, 작품 해설 등 전시에서 제공되는 정보를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다양한 문해수준을 고려해 작성하는 것을 말한다. 작품 이해에 필요한 기본적인 단서를 제공하고 이해에 도움이 되는 배경 설명을 더해 작품을 더 폭넓게 즐기고, 향유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 목적이다. 내용 외에도 가독성, 판독성을 고려한 레이블 디자인, 휠체어 사용자나 어린이 등 모든 이용자가 관람하기 편한 레이블 설치 방식 등 전반적인 전시 경험에서 접근성의 폭을 넓히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포함하기도 한다. 

 

쉬운 정보는 다양한 영역 어디에나 적용이 가능하지만, 예술 작품에 대한 해설을 제공하는 것은 이전까지 소소한소통이 만들어왔던 다른 쉬운 정보와 분명 공통적인 부분이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또 다른 고민과 관점이 필요한 작업이었다. 먼저 객관적인 정보 제공이 필요한 영역과 불필요한 영역의 경계를 어디에 둘 것인지, 쉬운 해설이 감상을 돕는 도구로서 쓰인다면 어떤 방식이 적절할지, 전시 내에서 제공 방식, 매체에 따라 어떤 것을 고려해야 하는지 등 새로운 시행착오를 통해 쉬운 전시 해설에 필요한 쉬운 정보 제작 방식을 구체화할 수 있었다. 또 전시와 관련된 접근성과 관련해서 정보접근성뿐만 아니라 물리적, 감각적, 정서적 측면 등에서 통합적으로 바라보며 연결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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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성인, 청소년 발달장애인과 함께한 국립중앙박물관 쉬운 전시 해설 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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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성인, 청소년 발달장애인과 함께한 국립중앙박물관 쉬운 전시 해설 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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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성인, 청소년 발달장애인과 함께한 국립중앙박물관 쉬운 전시 해설 투어

 

 

 

 

이런 새로운 경험과 노하우는 2022년 <모두를 위한 전시 정보 제작 가이드>로 만들어졌고,  무료 콘텐츠로 배포하고 있다. 쉬운 전시 해설 제작 경험이 소소한소통만의 것이 아니라 더 다양한 전시를 기획하는 데 쓰여서 발달장애인을 비롯해 더 많은 관람객이 누릴 수 있도록 더 확산되면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덕분인지 현재까지 다양한 미술관, 박물관 전시에서 ‘쉬운 해설’을 접근성 콘텐츠로 제공하는 케이스가 많이 확산되었다. 현재 소소한소통에서 진행한 전시 해설 작업만 해도 50건이 넘는다. 

 

예술이 굳이 왜 쉬워야 하는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쉬운 해설은 예술의 가치를 낮추어 보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예술의 가치를 알리고 그 가치를 알아보는 사람을 늘리는 일이다.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 관심이 부재한 채로 자신만의 감상이나 향유를 할 수는 없다. 쉬운 해설은 예술이라는 낯선 곳에서 길을 잃거나 애먼 곳을 헤매지 않도록 도와주는 이정표 같은 역할을 한다. 누군가만을 위한 전시가 아니라 누구나를 위한 전시가 될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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