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시작합니다, 쉬운 정보를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
2025.05.30

 

 

소소한소통은 그동안 꾸준히 소소의 이야기를 전해왔습니다. 다양한 주제의 쉬운 정보를 소개하고, 제작하게 된 배경 등을 파편적으로, 각기 다른 매체를 통해 전하다 보니, 소소한소통의 목소리를 통해 들려드리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소소한소통의 목소리로, 쉬운 정보를 만드는 사람들의 마음, 고민, 즐거움, 그리고 때로는 아쉬움을 전해보려 합니다.

소소한소통의 백정연 대표와 주명희 총괄본부장이 한 달에 한 번씩, 한 편의 글을 선보입니다. 오늘은 4월 24일 창립기념일을 맞아 소소한소통의 시작과 쉬운 정보의 의미에 대한 이야기를 준비했습니다.

백정연 대표가 직접 들려주는 소소한소통과 쉬운 정보의 시작을 비롯해, 앞으로 들려드릴 이야기를 기대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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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합니다, 쉬운 정보를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

백정연(소소한소통 대표)

 


2015년 11월 21일은 우리나라에 발달장애인법*이 시행된 날이다. 발달장애인법이 시행되었다고 해서 발달장애인의 삶이 하루 아침에 달라졌을까? 우리는 종종 법이 삶을 지켜줄 것이라 믿지만, 현실에서는 법이 손에 잡히지 않는 ‘체감하기 어려운 권리’로 여겨지곤 한다. 그런데 발달장애인법 제10조만큼은 달랐다.
*발달장애인법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의 약칭으로, 우리나라에서 특정 장애 유형을 대상으로 한 최초이자 유일한 법률이다. 


이전까지 그 어떤 법도 발달장애인의 정보 접근권을 보장하는 구체적인 수단을 명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제10조에 담긴 ‘이해하기 쉬운 정책 정보’는 발달장애인이 일상에서 마주치는 정보들을 실제로 쉽게 바꾸는 힘이 있다고 여겨졌다. 적어도 정책 정보만큼은 쉬워질 수 있겠구나 하는 기대가 생겼다.

당시 나는 장애 관련 공공기관에서 일하며,전문위원 자격으로 보건복지부에 1년 2개월간 파견되어 발달장애인법 시행을 준비했다. 시행령과 시행규칙의 조항을 하나하나 직접 써내려간 사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과정에서 나는 오랜 시간의 데스크 리서치를 통해 해외의 쉬운 정보 제공 사례들을 살폈다. 해외에서는 어떤 주제의 쉬운 정보가 존재하고, 그것이 어떻게 제작되고 있는지를 들여다보았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해외에서는 이렇게 다양한 주제의 쉬운 정보가 오래전부터 ‘권리’로서 제공되어 왔는데, 우리는 이제서야 시작일까?’ 그 고민은 상상으로 이어졌다. 우리나라에도 다양한 쉬운 정보 제작 기관이 생겨나고, 발달장애인이 쉬운 정보를 통해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 수 있는 날이 실현되는 상상을 말이다. 물론, 그때는 제작 기관을 직접 설립하겠다는 다짐은 아니었지만 운명적이면서도 우연한 계기로 지금의 소소한소통이 세상에 만들어지게 되었다.


 

시각장애인은 ‘보는 방식’ 대신 ‘듣거나 만지는 방식’으로, 청각장애인은 ‘듣는 방식’ 대신 ‘눈으로 보는 방식’으로 정보를 접한다. 정보 접근 방식은 개인의 특성과 상황에 따라 다양해질 수 있으며, 그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마찬가지로, 이해에 어려움이 있는 발달장애인에게 ‘쉬운 정보’ 역시 당연한 권리라는 생각으로 우리는 쉬운 정보를 만들고 있다.

쉬운 정보를 접한 발달장애인의 변화는 단지 ‘이해한다’는 수준에 머무르지 않는다. 이전에는 누군가에게 묻거나 의지해야만 했던 일상 속에서, 쉬운 정보를 스스로 이해하고 해낼 수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이는 자신감으로 이어졌고 단조롭기만 했던 일상은 새로운 경험으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무언가를 해보고 싶다’는 동기가 생기면서 삶에 대한 적극적인 태도도 함께 자라났다. 복잡하고 어려운 정보로 가득 찼던 세상 속에서 이해할 수 있는 정보가 점점 늘어나자 ‘쉽게 알려달라’ 요구하는 발달장애인도 있다. 이는 정보 접근권을 누리기 위한, 자신의 삶을 살아가기 위한 ‘자기 옹호(self-advocacy)’의 시작이다.

사람은 아침에 일어나 저녁에 잠들기까지, 의식하든 그렇지 않든 수천, 수만 건의 정보를 접하며 살아간다. 그중에는 단순히 지나쳐도 되는 정보도 있고 삶의 방향과 선택에 큰 영향을 미치는 정보도 있다. 정보를 이해하고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은 곧,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며, 이는 ‘나답게 살아가는 것’과 맞닿아 있다. 그렇기에 발달장애인에게 쉬운 정보는 선택이 아닌 필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기 위한 기본 조건이다.

올해 소소한소통은 설립 8주년을 맞이했다. 그동안 우리는 쉬운 정보가 왜 필요한지, 어떻게 만들어져야 하는지를 수많은 매체와 채널을 통해 꾸준히 알리고 목소리를 내왔다. 이제는 그 이야기를 하나로 모아보려 한다. 쉬운 정보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소소한소통의 걸음을 응원해주시는 분들과 더 깊이 나누고 싶다.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어떤 시간을 거쳐 쉬운 정보를 만들고 있는지, 그리고 쉬운 정보를 접한 발달장애인이 어떤 변화를 경험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우리의 이야기가, 우리를 알고 싶은 많은 사람에게 전해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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